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 함께하는 우리
Artist | 박형진

박형진은 인간 중심의 관망적 시선에서 벗어나, 자연이 스스로 드러내는 미세한 변화와 그 안에 축적된 시간성을 탐구해온 작가입니다. 도시를 기반으로 인간의 시선과 개발의 논리를 사유하던 초기 작업에서 벗어나, 작업실을 외곽으로 옮긴 이후 그의 관심은 자연의 색채, 기운, 그리고 끊임없이 변이하는 움직임으로 이동합니다. 이때 풍경은 더 이상 대상화된 이미지가 아니라, 스스로를 드러내는 시간의 장으로 기능합니다.

 

작가는 매일같이 대상을 관찰하고 드로잉을 축적하는 반복적 수행을 통해, 쉽게 감지되지 않는 변화의 흐름을 포착합니다. 자연의 변화는 단번에 가시화되지 않으며, 계절의 이행과 생장의 과정은 장기적인 관찰과 기록 속에서만 비로소 드러납니다. 이러한 시간의 밀도를 화면 위에 정착시키기 위해, 그는 그리드라는 인공적 좌표를 도입합니다. 그 위에 반복적으로 놓이는 색점과 원형은 단순한 조형적 요소가 아니라, 관찰과 축적,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이 응축된 흔적입니다. 색채 또한 감각적 번역의 장치로 작동하며, 자연의 변화를 공감각적인 방식으로 전환합니다.

 

그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것은 이와 같은 수행성입니다. 매일의 반복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지연된 시간을 따라가기 위한 방법론이며,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이미지들은 파편화된 흔적의 형태를 띠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각각의 점과 흔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획득합니다. 이는 자연의 존재 방식이자, 우리가 시간 속에서 서로 기대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시간의 축적이 하나의 공간 안에 응축된 형태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특히 1년 동안 자연이 변화하는 궤적이 한눈에 펼쳐지며, 봄의 <개나리동산 Garden of Korean forsythia>에서 시작해 여름 <오동나무_July to December>의 짙어지는 녹음, 그리고 <호두나무 August to September>에 단풍이 드는 계절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이 하나의 장면처럼 전개됩니다. 계절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는 자연의 사이클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하며, 관람객은 작가가 수행처럼 기록해온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게 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날씨의 변화, 초록의 농도, 바람의 결, 햇빛의 방향과 같은 미묘한 차이를 무심히 지나쳐 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면을 마주하는 순간, 그동안 흘려보냈던 변화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밀도 높은 사건이었는지 <호두나무 기록지>를 통해 새롭게 인식됩니다. 이때 박형진의 작업은 단순히 자연을 재현하는 회화를 넘어, 시간 속에서 함께 변화하며 존재하는 감각을 다시 배우도록 요청하는 경험으로 확장됩니다.

 

개나리동산, 2021, 모눈종이에 채색, 156x378cm (총56점) ©HyungJinPark

 

오동나무_July to December, 2021, 순지에 채색,각 130x100cm ©HyungJinPark

 

호두나무 August to September, 2024, 캔버스 위에 연필, 아크릴 물감, 180x145cm ©HyungJinPark

 

호두나무 기록지, 2023, 종이 위에 연필, 물감, 색연필, 29.5x42cm ©HyungJinPark

 

초록해설_오동나무, 2021, 순지에 연필,채색, 25cmx35cm ©HyungJinPark

 

박형진은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일상의 풍경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회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지금 이따가 다음에》(2022, 경기도미술관), 《까마귀와 까치》(2022, 상업화랑), 《푸르게 앉아있던 공》(2019, 온그라운드_지상소)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단체전으로는 《기다려!(전남도립미술관, 2025), 《다섯 발자국 숲》(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어린이미술관, 2024), 《생생화화편차의 편자》(김홍도미술관, 2024), When the World Stops Turning(Starch, 싱가포르, 2024), DMZ 전시: 체크포인트》(캠프 그리브스, 파주, 2023), 《제4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주제관_열린송현광장, 2023), Contourless (West Bund Art Center, 상하이, 2022),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비엔날레3, 2021), 《인블룸》 (하이트컬렉션, 서울, 2021) 등에 참여했다. 또한 송은미술대상, 아르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 지원사업,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 등에 선정되며 작업의 지속성과 동시대적 의의를 인정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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